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환한 은발. 전체적으로 분홍빛이 돌아 회분홍, 정확히는 은분홍에 가까울 색을 가진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까지 길렀다. 가장자리에서부터 중앙으로 갈수록 길어지는, 즉 완만한 V자 형태로 다듬어져 있기에 가장 긴 부분은 날개뼈를 다 덮는 길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는 머리카락의 몇 가닥이 얼굴이며 눈을 찌르기도 하지만, 조금 길게 자른 앞머리의 대부분은 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으로 모아져 핀으로 고정되어 있다. 토끼 모양의 플라스틱 장식이 달린 실핀은 후술할 목걸이에 걸려 있는 것과 같다. 즉, 목걸이에 있는 것이 여분.

 흘러내린 은빛 머리카락 아래 말간 눈동자는, 굳이 정한다면 분홍에 가장 가까운 색이다. 부드러운 매홍색, 그러나 때로 붉은 빛이 돌거나 보랏빛이 돌기도 하기에 확실히 특정짓기 어려운 색.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두 눈의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보는 사람 기준 왼쪽이 조금 더 붉은색에 가까운 분홍이며, 오른쪽은 그보다 자주에 가까운 분홍색이다. 긴 속눈썹 위로 얇은 쌍커풀이 있고, 그 위로 조금 늘어진 모양의 가는 눈썹이 자리했다. 바깥쪽으로 갈수록 내려가는 눈썹의 모양은 팔(八)자눈썹이라고 부르는 그것.

 천진하게 웃는 얼굴은 나이에 비해 다소 어려보였으나, 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까닭에는 시종일관 쾌활한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키나, 가느다란 팔다리나, 인형처럼 하얀 얼굴이 연약한 인상을 준다. 햇빛을 잘 보지 않아 탈 일이 없는 피부지만, 팔이나 다리의 접히는 부분은 약 때문인지 색소가 침착되어 눈에 띄게 어둡다. 이 때문에 소매가 긴 옷을 자주 입지만, 다리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게 무릎 뒤쪽은 제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저보다 키가 훨씬 큰 사람의 것인 게 분명한, 그 작은 몸에 지나치게 큰 후드티를 걸쳤다. 양쪽 주머니에 지퍼가 달린, 흐린 청록색의 후드티. 주머니 속의 내용물-펜과 박하사탕-로 보아 아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후드티 안에는 소매가 팔꿈치 조금 아래까지 내려오는 하얀 면 티를 입었다. 기장이 긴 편이라 짧은 원피스처럼도 보인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면바지를 입고, 목이 짧은 하얀 양말을 신은 위에 짙은 자주색 단화를 신었다. 신발에는 굽이 없지만, 나이를 감안하면 이상적임에 가까운 신체 비율에 힘입어 그리 심하게 작아보이지는 않는다.

 안쪽에 무언가 적혀 있는 검은색 초커를 하고, 명치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끈에 왼쪽부터 차례대로 열쇠, 호루라기, 머리핀이 펜던트처럼 걸려 있는 목걸이를 하고 있다. 열쇠는 조잡한 금속제에, 호신용 호루라기는 노란색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으며, 머리핀은 머리에 하고 있는 그것과 똑같이 생긴, 여분이다.

 오른손에 토끼 인형을 들고 있다. 레몬색 수면양말로 만든, 폭신폭신하고 작은 인형. 목에는 파란 리본이 매듭지어져 있다. 손에서 떼어놓기 싫어한다. 오죽하면 인형의 손을 잡기 위해 후드티의 오른쪽 소매를 정성스레 접어 올렸을 정도.